이시다 미츠나리와 재승박덕
이시다 미츠나리는 히데요시가 절에 갔다가 심부름하는 애가 빠릿빠릿해 보여 데려다 업어 키웠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히데요시 심기 읽는데는 뛰어났지만 전형적 책상물림으로 전국시대 무장으로서는 꽝이었다.

히데요시의 마지막 정벌인 오다와라 전투때 자기도 유능한 무장임을 보여 주겠다며
오시성 공략을 자청했다 망신만 당했고,
임난땐 행주산성에서 10배나 많은 병력으로도 권율 장군에 총까지 맞고 참패했다.
하지만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진 히데요시의 신임을 업고 많은 전횡을 휘둘렀다.
임난때 가토 기요마사는 미츠나리의 음해성 허위 보고로 전쟁중에 히데요시에 불려가 근신 처분을 당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미운데 박덕하기까지 하니 당연히 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히데요시가 죽자 히데요시 패밀리의 분열은 심해진다. 이시다 미츠나리의 문치파와 가토 기요마사 등의 무장파의 대립이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는 히데요리의 생모 요도부인에게 밀착하며 상대적으로 히데요시의 정실 네네를 홀대한다.
그러다 보니 네네 조차 세키가하라 전투를 앞두고 고민에 빠진 히데요시 키즈들이 자문을 구하자 이에야스를 도우라 조언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니 미츠나리가 도요토미가를 위해 이에야스를 토벌하겠다고 나서도 호응을 얻지 못했고 결국 세키가하라에서 패할 수 밖에 없었다.
히데요시는 죽어서도 다이묘들과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에야스가 도요토미가를 멸망시키는데 17년이 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다 미츠나리가 덕장이었다면 일본 역사가 바뀌었을 거란 견해에 난 동의한다.
늘 재승박덕이 문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왜 재가 승한 자들은 대부분 박덕할까?
德不孤 必有隣이라 했다.
똑똑함 자랑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자.
(히데요리가 미츠나리의 씨라는 설도 있었으나 요도가 히데요리 임신한 날을 따져 보니 그가 조선에 있을 때여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됨)